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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국가정원의 가을 / 김용수
2026-09-07 오전 5:29:45 참살이 mail yongsu530@daum.net


    김용수  편집국장


    와아! 드디어 가을이 왔는가 싶다.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는 감각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서늘해진 아침 공기일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길가에 흩날리는 낙엽의 색일 것이다. 아니다. 풍요 속의 빈곤과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남 순천만의 가을을 온전히 느껴본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이곳의 가을은 바람에 일렁이는 소리와 그 빛깔로 시작된다는 것을.

     

    대한민국 1호 국가정원인 순천만 국가정원은 가을이 오면 정교하게 설계된 예술작품처럼 변모한다. 여름내 푸르름을 자랑하던 수목들은 저마다의 톤으로 붉고 노랗게 물든다. 게다가 세계 각국의 양식을 담은 정원들은 가을꽃인 국화와 코스모스, 핑크뮬리로 새 옷을 입는다.

     

    하지만 순천만 가을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국가정원을 지나 자연 습지로 이어지는 갈대밭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수많은 갈대 줄기가 서로 몸을 비비며 내는 소리는 도시의 소음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가만히 두드린다. 석양이 내릴 무렵, 능선을 넘어가던 햇살이 갈대숲에 닿으면 세상 전체가 붉은 황금빛으로 물든다. 그 풍광은 황홀경이 아닐 수 없다.

     

    자연이 만든 순천만 습지와 인간의 손길로 조성된 국가정원이 만나 이뤄내는 조화는 단순한 관광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곧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가꾸며 동반자로 살아가는 지혜가 이 가을 빛깔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가끔 사람들은 산업사회의 피로감을 느낀다. 일상의 속도가 너무 빠르게 느껴질 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순천만을 찾아보길 권한다. 왜냐하면 가을 바람에 서걱이는 갈대 소리와 붉게 물든 노을을 바라보면 그 피로도가 풀리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슴 속 깊은 곳까지 계절이 주는 안식과 충만함으로 가득 차오를 지도 모른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그러나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가을의 본질은 오히려 '비워냄'과 '지워짐'에 가깝다. 나뭇잎은 붉은 빛을 마지막으로 태운 뒤 땅으로 돌아가고, 서늘해진 바람은 여름내 밀도 높게 채워졌던 습기의 공백을 건조하게 메운다.

     

    따라서 순천만 국가정원의 가을은 사물의 경계가 부드럽게 무너지고 자연의 본래 결을 드러낸다. 아름다운 미학과 철학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마도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이 고유의 연안 습지를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아선 '생태적 완충지대로 태어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찰스 잰크스가 디자인한 '봉화언덕'을 천천히 오르다 보면, 나선형의 능선을 따라 인공적으로 조성된 정원의 질서정연함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형의 곡선과 나뭇잎의 색채가 조화를 이루는 이곳의 가을은 철저히 정돈된 아름다움이다. 즉 인간이 자연을 향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정성 어린 헌사다.

     

    그러나 국가정원에서 스카이큐브를 타고, 혹은 동천을 따라 걸어 습지로 다가서는 순간, 인간이 만든 미학의 틀은 순식간에 해체된다. 순천만 습지의 갈대밭은 무려 5,400여 평에 달하는 거대한 생명의 영역이다.

     

    이곳에서의 가을은 단순히 '보는 대상'이 아닌, 온몸의 감각을 통과하는 '현상'으로 다가온다.바람이 불 때마다 수십만 그루의 갈대가 동시에 서걱거리며 내는 소리는, 바다의 파도 소리와 닮아있다. 그것은 지상으로 내려온 바다이며, 바람의 궤적을 눈으로 보게 만드는 자연의 기호학이다.

     

    해질녘, 용산전망대에 올라 바라보는 순천만은 가을 미학의 정점을 찍는다. S자 형태로 굽이치는 물길 위로 남해의 갯벌이 드러나고, 그 위를 황금빛 노을이 낮게 엎드린다. 어디까지가 땅이고 어디부터가 물인지, 무엇이 인간의 구역이고 무엇이 흑두루미의 터전인지 구분하기 힘들 만큼 붉은 빛 속에서 모든 경계가 허물어진다.

     

    순천만의 가을이 매년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단순히 예쁜 풍경 때문만은 아니다. 정교하게 가꾸어진 '인공의 정원'에서 시작해, 마침내 자연 스스로 완성한 '생태의 습지'로 이어지는 여정 속에서 사람들은 잊고 있던 본연의 질서를 회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겨울을 나기 위해 만 리 길을 날아오는 흑두루미의 날갯짓이 방증한다. 순천만의 가을은 비워진 자리에 다시 새로운 생명이 들어설 자리를 준비하는 거대한 숨고르기고 말이다. 도시의 촘촘한 일정과 빽빽한 관계 속에서 지쳐 있다면, 순천만의 갈대밭 사이를 홀로 걸어볼 일이다.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서로를 감싸 안으며 쓸리는 갈대 소리를 들을 때, 비로소 내 안의 가파른 경계들도 순하게 누그러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참살이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26-09-07 05:29 송고
    순천만 국가정원의 가을 / 김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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